LEE HANNA · PERSONAL STORY

치과의사 이한나,
내가 걸어온 조금 다른 길

치아를 치료하는 의사에서 직접 디자인하고 만드는 치과의사가 되기까지

1994년의 임상 시작에서 왁스업·세라믹 제작·디지털 기공으로 이어진 기록

STORY 01

01. 왜 치과의사가 직접 치아를 만들게 되었을까요?

처음부터 치기공을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제가 생각한 치아 모양을 더 정확히 표현하고, 환자분께 치아를 만들어 드리는 과정을 개선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왁스업에서 라미네이트, 디지털 기공과 임플란트 보철 제작까지 이어졌습니다.

치과의사는 진단과 치료계획을 세우고 치과기공사는 그 계획에 맞는 보철물을 제작합니다. 저는 그 협업 안에서 제가 생각한 치아의 형태와 비율을 더 구체적으로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직접 디자인하고 만드는 일은 진료 현장에서 느낀 답답함을 풀어가는 과정이었지요.

제가 치아를 직접 만든다는 사실을 자랑하려고 이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에요. 어떤 고민 때문에 왁스를 잡았고, 어떻게 세라믹과 디지털 기공까지 이어졌는지 그 과정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STORY 02

02. 치과의사로 첫발을 내딛다 — 1994~1995년

저는 1994년에 부산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습니다. 1년간 울산에서 봉직의로 근무하고, 다음 해인 1995년 1월 서울에 올라와 이한나치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드라마 「모래시계」가 방영되던 때였어요.

울산에서 봉직의로 있을 때 길 건너편의 한 치과 원장님이 직접 치기공을 정교하게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함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지금처럼 디지털 장비를 쓰는 시대도 아니었는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그때부터 저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치기공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개원 후 몇 년 동안은 일반적인 신경치료와 보철치료 등을 하며 진료를 이어갔습니다.

STORY 03

03. 임플란트와 새로운 치료방식에 도전하다 — 1998~2000년

1998년부터 임플란트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몇 년에 걸쳐 임플란트를 공부했고, 가톨릭대학교 임상치과대학원 임플란트학과에서 최용창 교수님께 많은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2000년부터 즉시하중 전체임플란트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즉시하중은 임플란트를 심은 뒤 비교적 이른 시기에 보철물을 연결해 사용하는 치료 방식입니다. 적용 여부는 초기 고정과 잇몸뼈 상태 등 여러 조건을 살펴 결정해야 합니다.

2003년에는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무료 임플란트 치료를 했습니다.

이후 제 진료는 임플란트와 심미치료라는 두 분야로 이어졌습니다. 각각의 기술을 배우면서도, 환자의 상태를 보고 계획해야 한다는 기본은 같았습니다.

STORY 04

04. 원하는 치아를 만들기 위해 직접 왁스를 잡다 — 2002년

치아미용치료도 처음부터 제가 꼭 해야겠다고 정해 놓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수업에서 교수님의 치아미용 강의를 들은 뒤 관심을 갖게 되었고,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심미치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치료를 시작하니 제가 상상한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치과기공사와 대화를 많이 나누고, 기공의뢰서에도 원하는 형태를 자세히 설명해 보았어요. 그래도 제가 생각한 모양을 말과 글만으로 전달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제가 직접 왁스로 원하는 치아 모양을 만들어서 보냈습니다. “이 모양 그대로 만들어 주세요”라고요. 치아의 길이와 폭, 비율과 곡선을 제가 먼저 표현해 보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2002년부터 왁스업을 일일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왁스로 만든 형태를 기공소에서 보철물로 제작해 오면서, 제가 생각하는 치아디자인을 구체화해 갈 수 있었습니다.

이한나 원장의 치기공 이야기 자료 사진
기존 치기공 스토리에 수록된 자료 사진. 촬영 연도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STORY 05

05. 아름다움보다 먼저 생각한 자연치아의 보존

왁스업을 하다 보니 환자의 얼굴 비율과 조화를 이루는 치아 형태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치아를 덜 삭제하면서 자연스러운 형태를 만들려면, 완성할 모양부터 계획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는 왁스로 완성할 모양을 만든 뒤, 그 모형에서 인덱스라는 가이드를 제작해 삭제 범위를 확인했습니다. 치아 표면만 보고 일률적으로 깎는 대신, 보철물에 필요한 공간이 어디인지 살피려는 과정이었습니다.

시간은 많이 들었지만 당시에는 왁스작업 없이 심미치료를 하지 않았습니다. 왁스업과 인덱스로 삭제 범위를 계획하고, 인상 자료와 함께 왁스업 모형을 기공소에 보내 원하는 형태를 전달했어요.

이와 관련한 제 생각과 작업을 정리해 2006년 「다빈치 치아성형 아틀라스」를 출간했습니다. 치아를 예쁘게 만드는 것과 치아조직을 보존하는 일을 따로 생각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무렵 치아미용 진료와 디자인 활동이 알려지면서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당시에는 치아미용치료를 하는 의사를 비판하는 분위기도 있었어요. 저는 대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진료했지만, 그 과정이 늘 편안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치아조직은 한 번 삭제하면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무삭제나 최소삭제의 적용 여부와 범위는 치아 위치·색상, 남은 조직, 교합과 필요한 보철 공간에 따라 달라집니다.

치아 디자인과 제작에 관한 원문 자료 사진
기존 스토리의 치아 디자인·제작 자료. 촬영 시점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한나 원장의 치아 형태 디자인 작업
이한나 원장의 치아 형태 디자인 작업
STORY 06

06. 해외 심미치과의사·치과기공사와의 만남

2005년에는 뉴욕에서 심미치과의사 그레그 리투치(Gregg Lituchy)와 치과기공사 제이슨 킴(Jason Kim)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심미치료 방향을 접하면서, 제가 진료에서 고민하던 치아의 형태와 얼굴의 조화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뉴욕에서 만난 제이슨 킴의 추천으로 갈립 귀렐(Galip Gürel) 박사의 저서 「The Science and Art of Porcelain Laminate Veneers」를 접했습니다. 책을 소개받은 일과 저자를 직접 만난 일은 서로 다른 경험입니다.

이 책은 라미네이트 치료에 대한 제 시야를 넓혀 주었습니다. 자연치아의 아름다움과 보존을 함께 추구하는 저만의 치료 철학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큰 영감을 받았어요.

2007년에는 갈립 귀렐 박사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함께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직접 손으로 치아를 만들며 생긴 질문과 해외에서 접한 생각들이 제 디자인 안에서 이어져 온 것 같습니다.

2005년 뉴욕에서의 만남. 기존 기술력 페이지에 수록된 그레그 리투치·제이슨 킴과의 사진.
2005년 뉴욕에서의 만남. 기존 기술력 페이지에 수록된 그레그 리투치·제이슨 킴과의 사진.
2007년 갈립 귀렐 박사의 한국 방문 당시 함께 촬영한 이한나 원장과 갈립 귀렐 박사
2007년 갈립 귀렐 박사의 한국 방문 당시. 왼쪽은 이한나 원장, 오른쪽은 갈립 귀렐 박사입니다.

갈립 귀렐 저서의 출판사 도서 안내

STORY 07

07. 직접 세라믹을 만들기 시작하다 — 2005년

어느 날부터 기공소에서 온 치아가 제가 보낸 형태와 다르게 만들어져 왔습니다. 알고 보니 저와 오랫동안 손을 맞춰 온 기공사가 그곳을 그만두었던 것입니다.

그 기공사인 신재욱 기공사님을 수소문했습니다. 이후 병원 안에 치기공실을 만들고 함께 작업하게 되었어요. 신 기공사님이 잠시 퇴사한 뒤에는 윤상희 기공사님이 이어서 기공을 맡았습니다.

2005년 윤 기공사님이 더 배울 수 있도록 세라믹 재료 회사인 이보클라의 해외 연수를 보냈습니다. 그동안 일주일가량 제작 일정이 밀렸고, 결국 제가 직접 세라믹 기공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왁스업을 계속 해 왔고 학교에서도 손으로 하는 기공과정에 익숙했던 터라, 기공 마무리에 직접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계획한 형태가 실제 보철물로 완성되는 과정까지 제가 맡게 된 계기였지요.

기공은 힘든 일이지만 해 본 사람은 그 집중하는 마음을 알 거예요. 작업을 하다 보면 무아지경에 이르고, 마음이 집중되면서 평안해지기도 했습니다.

STORY 08

08. 낮에는 치과의사, 밤에는 세라미스트

이후 윤 기공사님이 그만두면서 신 기공사님이 다시 함께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 초, 신 기공사님도 개업을 위해 병원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기공에서 중요한 최종 왁스작업과 최종 피니싱을 제가 직접 맡아야 했어요. 당시 심미치료를 받는 환자가 많아 낮에는 진료하고 밤에는 기공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몸이 많이 지쳤습니다.

치아 모양을 직접 디자인하는 것과 재료를 가공해 완성하는 일은 연결돼 있었습니다. 저는 진단과 치료를 하는 치과의사이면서, 세라믹을 다루는 세라미스트의 작업도 함께하게 된 셈이지요.

‘세라미덴티스트’는 세라미스트(Ceramist)와 치과의사(Dentist)를 합친 표현입니다. 제가 해 온 디자인과 제작의 연결을 설명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별도의 법정 전문의 자격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 글에 수록된 치기공 작업 영상. 촬영 연도와 영상 속 작업 단계는 확인 중입니다.
STORY 09

09.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 2007년 CEREC 도입

2007년 10월, 세렉(CEREC)이라는 장비가 세라믹을 가공해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장비를 도입하면 야간 기공작업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수억 원을 들여 장비를 세팅했습니다.

그런데 큰 투자를 했다고 말처럼 쉽게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장비와 프로그램은 지금과 달랐고, 제가 원하는 모양을 만들려면 새로운 작업 방식을 익혀야 했어요.

장비와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려고 밤마다 치과에 남아 디자인과 밀링을 반복했습니다. 몇 달 동안 밤샘작업을 한 것 같습니다. 어떤 날은 집에도 못 가고 치과 체어에서 잤고, 아침에 출근한 직원이 깜짝 놀라기도 했지요.

얼마 전 세렉 관련 의사들 모임에 갔더니 저를 “시조새”라고 부르더군요. 오래전부터 장비와 씨름했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별명이었습니다.

왁스업과 세라믹 제작을 손으로 해 본 경험은 디지털 화면에서 형태를 계획하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손으로 해 온 디자인을 다른 도구로 표현하는 과정이기도 했어요.

기존 원장 소개 페이지의 디지털 가공 장비 사진. 촬영 시점은 확인되지 않은 자료 사진입니다.
기존 원장 소개 페이지의 디지털 가공 장비 사진. 촬영 시점은 확인되지 않은 자료 사진입니다.
STORY 10

10. 직접 디자인하고 당일 제작하는 시스템

그렇게 세렉을 이용한 라미네이트와 보철 제작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왁스업과 인덱스로 치아 형태와 삭제 범위를 계획했다면, 이후에는 컴퓨터상에서 치아를 디자인하고 가공하는 방식까지 활용하게 되었어요.

저는 세렉을 사용하면서 필요한 공간을 검토하고 삭제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렇다고 장비만으로 삭제량이 줄거나 모든 치료가 같은 방식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남아 있는 치아조직과 필요한 보철 공간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디자인과 제작을 직접 확인하는 과정은 제가 생각한 모양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살피는 데 의미가 있었습니다. 환자의 치아 상태와 얼굴, 미소에 맞춰 형태를 확인하고 조정하려 했습니다.

치아와 잇몸 상태, 치료 범위와 제작 조건에 따라 당일 제작·부착이 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모든 환자에게 당일완성이 가능한 것은 아니며, 필요한 방문 일정은 진단 후 안내합니다.

STORY 11

11. 임플란트 보철까지 제작 영역을 넓히다 — 2018년경

2018년 여름부터는 임플란트 보철 제작에도 더 깊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시작은 거창한 이유만은 아니었어요. 당시 중국인 환자가 줄면서 매출이 감소했고, 병원 규모를 갑자기 줄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오랫동안 유지해 온 임플란트 비용을 조정했습니다.

당시에는 지하철 광고도 진행했습니다. 이후 임플란트 진료와 기공량이 늘어났고, 이전보다 구강 상태가 심각한 환자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마주하던 상태를 거의 매일 보게 됐다는 느낌을 원래 글에 적어 두었지요.

제작량이 많아지면서 장비를 추가하고 활용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장비를 더 효율적으로 써 보자는 제안이 바로 실행되기 어려웠고, 결국 제가 직접 해 보기로 했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환자분께 치아를 끼워 드리고 싶었거든요.

디자인은 이전에도 제가 했지만, 그때부터는 밤에 남아 임플란트 지대주와 지르코니아 가공까지 직접 하게 되었습니다. 지대주는 임플란트와 보철물을 연결하는 부분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기공 전반이 이어지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이후에는 시멘트 없이 연결하는 임플란트 보철을 준비하며 정밀가공 장비를 더 도입했고, 스캔 장비도 업데이트해 왔습니다.

2020년에는 세미커스텀 지대주를 개발해 전체임플란트 임시치아에 적용했습니다.

돌아보면 제 급한 성격이 장비에 투자하게 만든 면도 있어요. 환자분께 보철물을 만들어 드리는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STORY 12

12. 나만의 치아디자인 철학

치아 형태를 생각할 때 길이와 폭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얼굴 비율과 미소, 치아의 투명감과 색상, 좌우의 균형, 기능과 맞물림을 함께 살핍니다. 같은 형태를 모두에게 적용할 수는 없으니까요.

환자의 전신건강과 구강 구조, 교합, 얼굴 비율과 생활습관까지 살피면서 환자마다 치료계획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법랑질의 두께와 치아의 형태, 식습관도 개인마다 다릅니다.

치료계획을 세울 때에는 남아 있는 치아조직을 보존하는 일, 보철물의 형태와 기능, 맞물림을 함께 고려합니다. 환자가 원하는 방향을 듣고, 그 조건에서 가능한 것과 어려운 것을 함께 의논하려 합니다.

제가 지향하는 진료에서는 환자가 치료의 주체로 참여합니다. 기능적 안정성과 심미적 만족을 함께 추구하되, 치료 방법과 결과에는 개인차가 있다는 점도 설명해야 합니다.

STORY 13

13. 지금도 계속되는 연구와 변화

저는 기술의 발전이 환자에 대한 배려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디지털 치료법, 보철 재료와 심미 디자인 시스템을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손으로 왁스를 만들고 세라믹을 마무리하던 작업이, 지금은 구강 스캔과 디지털 디자인, 가공과 검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비를 갖추는 일만큼 그 장비를 어떤 치료계획 안에서 사용할지 판단하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2026년에는 금속가공을 시작해 메탈바를 이용한 다양한 임플란트 보철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글을 쓸 때에는 “지금 제 나이가 50대 중반입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때의 생각은 오랫동안 경험하고 실패를 극복한 이야기를,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다른 치과의사들에게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치아디자인부터 가공까지 교육하고 싶다는 계획도 적어 두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생각과 계획을 담은 기록이며, 현재 교육 프로그램의 개설이나 모집을 안내하는 뜻은 아닙니다.

현재의 디지털 제작 시스템 보기 →
STORY 14

14. 앞으로도 내가 걸어갈 길

어떤 기술이든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자의 삶과 감정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적합한 답을 찾으려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치과의사의 역할입니다.

왁스업을 시작한 것도, 밤에 세라믹을 만들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익힌 것도 진료에서 마주한 문제를 풀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그 시간들이 지금의 제 진료와 디자인에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도 환자분의 상태를 먼저 살피고,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배우고, 필요한 과정은 제 손으로 확인하는 치과의사로 남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한나 원장의 공식 프로필 →하루에치과 기술력 →

이한나 원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한 기록입니다.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치료 적용 조건을 구분해 소개합니다.